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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묵상

매일의 묵상 04월 29일 ("계명"과 "율법")

by 김복음 2023.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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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5)

 

 신약성경에 계명이 있다니요? 사람들은 "계명"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즉시 "율법"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 단어는 동의어가 아닙니다. 주 예수님처럼 계명에 대해서 많이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또한 주 예수님처럼 율법적이지 않은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율법주의란 무엇입니까? 비록 율법주의란 단어 자체는 신약성경에서 발견되지 않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호의를 얻거나 그것을 받을 만한 상태가 되기 위한 인간 편에서의 부단한 노력을 의미합니다. 본래 그것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칭의나 성화를 얻으려는 시도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그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단어는 엄격한 도덕적인 규율로 생각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보다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금기사항으로 분류하는 일체의 시도를 사람들은 흔히 "율법적"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율법주의"란 단어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대한 거의 모든 제재, 혹은 일체의 부정적인 규제를 반박하기 위한  손쉬운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율법주의"와 관련된 위험을 피하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해방되긴 했지만 무법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법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해서는 안되며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해야 합니다.

 둘째로, 신약성경은 제법 많은 금지조항을 포함한 계명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은, 이들 계명들이 형벌이 덧붙여진 율법으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의로운 가르침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에게 적법하긴 하지만 유익하지는 않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적법할 수도 있으나 또한 우리를 얽매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고전 6:12)

 신자는 어떤 일을 할 자유가 있는 반면에 그것을 행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그는 그것을 행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금지사항을 "율법적"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곧 그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또한 어떤 행동규범을 비난하기 위해 "청교도적"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러나 청교도들의 행동은 그들을 비난하는 많은 사람들의 행동보다 훨씬 더 그리스도의 이름에 영예를 돌렸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간에 이미 경건한 행동방식으로 받아들여진 것들을 "율법적"이라고 비난할 때, 그것은 너무도 종종 그들이 더욱 많은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그들의 도덕적인 기준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조짐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천진스럽게도, 소위 율법주의자나 청교도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면 그들 자신이 더욱 훌륭하게 보일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우리의 안전은 우리가 얼마나 벼랑 끝 가까이까지 다가갈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데 있지 않고, 성경의 가르침에 가능한 한 가까이 머무르는데 달려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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