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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묵상

매일의 묵상 03월 19일 (하나님을 돕지 아니하면)

by 김복음 2023.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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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삿 5:23)

 

 드보라의 노래는 메로스에 대한 저주를 선포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족과 전쟁 중에 있을 때 옆에서 방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르우벤 사람들도 신랄한 책망을 들었는데, 그들은 좋은 의도를 품었으나 양의 우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길르앗, 아셀, 단도 전쟁에 개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단테는 말하기를,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인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키는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라고 했습니다.

 잠언에도 같은 취지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잠 24:11~12) 키드너는 설명하기를 "열악한 조건이나 책임의 과중함, 혹은 무지를 타하는 사람은 참 목자가 아니라 삯꾼이다. 사랑은 그렇게 가볍게 열기가 가라앉지 않으며 사랑의 하나님 역시 그러하다."라고 했습니다.

 만일 반유대인 운동의 거대한 물결이 온 나라를 휩쓸고 유대인들이 강제 노동소나 가스실로 끌려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는지요? 우리의 목숨을 내걸고 그들을 숨겨줄 수 있을는지요?

 만일 우리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당하고 그들을 숨겨주는 것은 중대한 범법행위라면, 과연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집에 맞아들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는지요?

 혹은 이보다 덜 영웅적이지만 보다 실제적인 경우를 들어봅시다. 당신이 어떤 기독교 기관의 책임자로 있는데, 한 충실한 고용인이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다른 한 책임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누명을 쓰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은 그런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는지요?

 만일 우리가 예수께서 심문을 당하실 때 산헤드린 공회 앞에 있었다면, 혹은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십자가 곁에 있었다면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중립을 지켰을까요? 아니면 그분 편에 서서 그분의 입장을 대변했을까요?

 "침묵은 항상 금은 아닙니다. 그것은 겉만 누런 빛을 띨 때도 있습니다."

사사기 5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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