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분을 기념하기 위해 주님의 상 앞에 나아갈 때 자주 경험하듯이,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라는 사실은 우리의 그리스도인 경험 가운데 이따금씩 아주 분명히 엿보입니다. 마치 두껍고 관통할 수 없는 휘장이 드리워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채 그 한 편에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우리의 구속의 전체 드라마(베들레헴, 겟세마네, 가바다, 갈보리, 빈 무덤, 하나님 우편에 계신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뭔가 엄청나게 광활한 것이 있음을 깨닫고 자세히 살피려고 애쓰지만,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끼기보다는 생기없는 시신처럼 느낍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 죄를 위한 구주의 고난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그분꼐서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그 두려운 일을 이해하려고 긴장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가 영원토록 받아야 할 고통을 당하셨음을 압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를 깨닫는데 실패합니다. 우리는 탐험되지 않은 바다의 가장자리에서 서 있습니다.
우리는 땅의 최악을 위해서 하늘의 최선을 보내신 사랑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잃어진 자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 이 죄악의 수렁으로 독생자를 보내신 일을 기억하며 감동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식에 넘치는 사랑의 일부만을 겨우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해서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신 구주의 은혜를 노래합니다. 이는 천사들로 흠모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우리의 눈은 그러한 은혜의 풍성함을 보려고 긴장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근시안에 의해 제한을 받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분의 갈보리 희생에 대한 묵상에 사로잡혀야 함을 알지만, 그러나 너무도 종종, 이상하게도 우리는 감동이 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휘장 저편에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면,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하빈다.
"오, 나를 위해 피흘리고 죽으신 어린 양이여, 그 비밀을 곰곰히 묵상하면서도 당신을 더욱 사랑하고픈 감동이 일지 않는다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요!"
"오, 그리스도여, 당신의 십자가 아래 서서 그 피가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니 어찌 사람이 아닌 돌이라 하지 않으리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처럼 우리의 눈은 가리워져 있습니다. 그 베일이 벗겨지고, 우리가 더 밝은 눈으로 부서진 떡과 부어진 잔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될 때가 속히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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