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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신앙 서적/그리스도인과 재물

재물에 대한 성경의 교훈

by 김복음 2022.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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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우리는 풍기가 문란해지는 세상에서 부요한 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정당화하려는 주요 논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논박들에 대하여 성경의 많은 부분들은 우리에게 재물의 위험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1)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잠 28:20~22)

 재물을 찾아 미친 사람처럼 헤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합당치 않습니다.

 

(2)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이 말씀에는 하나님과 돈이 두 주인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 두 존재의 관심사는 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이 둘을 동시에 섬기기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두 종류의 세계를 위해 살고자 하는 욕망, 곧 현재에도 부자로 살고 그때에 가서도 부자로 살고자하는 욕망, 아래에서도 재물을 즐기고 위에서도 그것에 대해 상급을 받고자하는 욕망에 치명타를 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둘을 다 가질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 19:23~25)

 저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분은 부자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일이 어렵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늘귀가 성문에 있던 조그만 쪽문을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약대가 그것을 통과해 들어가려면 몸을 구부려야 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바늘은 바느질에 쓰이는 실제의 바늘을 가리키며,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는 약대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일어나는 특별한 기적만이 부자를 천국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영원한 복지에 그처럼 방해를 끼치는 것을 옹호하려고 애쓸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4)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 12:33~34)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22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그것을 회피해 보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어째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란 말입니까? 이와 같은 말씀들을 거절하는 것은 곧, 축복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소유를 팔아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투자하는 것은 이 은혜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합당한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은행의 지하 금고에 있습니까, 아니면 하늘에 있습니까?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 12:34)

 

(5)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눅 18:22~23)

 우리는 그 부자 청년 관원은 특별한 경우이고 모든 소유를 다 팔라는 명령은 우리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끊임없이 듣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위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는 우리가 방금 전에 생각해 본 말씀(눅 12:33~34)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분질상 다르지 않습니다.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옥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딤전 6:6~11)

 바울은 돈을 사모하는 자들이 많은 근심으로자기를 찔렀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근심은 어떤 것일까요?

 

① 첫번째 근심은 재물의 뒤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걱정입니다.

 "부자는 그 풍부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전 5:12) 안전을 보장해 줄 것으로 생각되는 재물은 정작 그 반대로 갖다주는데 그것은 곧 강도, 주식시장에서의 증권시세 하락, 인플레이션(통화팽창) 동등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입니다.

 

② 두번째는 자기 자녀들이 지나치게 풍부한 물질로 인해 영적으로 실족하는 것을 보는 슬픔입니다. 재물이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 중에서 주님을 위해 계속 살아가는 자녀들을 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③ 부자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잠언 14장 20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과 무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잠 14:20) 하지만 그들이 과연 찬된 친구들일까요? 아니면 그저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친구 노릇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④ 재물은 결국에 가서 마음에 민족을 주지 못하고(전 2:8, 11) 더욱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킵니다. (전 4:8, 5:10)

 

⑤ 재물은 종종 부자의 성품에 악영향을 끼쳐서, 예를 들면 교만케 하고(잠 28:11) 무례한 태도를 갖게 합니다. (잠 18:23, 약 2:5~7)

 메튜 헨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재물에 대한 히브리 원어는 '무겁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물은 하나의 짐인 셈입니다. 그것은 벌어들일 때 생기는 걱정의 짐이요, 슬픔의 짐이요, 마지막에 가서 설명해야 할, 즉 하나님 앞에 가서 자신의 재물의 용도에 대하여 설명해야 할 짐입니다."

 

(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 6:17~19)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부(富)한 자들을 명하여...하라." 라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종들중에서 이 부탁을 신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들 중에서 누가 부자들에게 명해 보았습니까?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이 구절에 관한 메시지조차 들어보지 못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이 혁신적인 메시지가 오늘날처럼 필요한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려면 우리가 먼저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마일 우리가 보이는 것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재물을 이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입술을 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과가 어떻든 간에 자기 말을 아무 두려움 없이 전파하는 선지자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다음과 같이 소리친 아모스 선지자와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핢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 4:1~3)

 또는 다음과 같이 외친 학개 선지자와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학 1:4)

 물론 이 선지자들은 전혀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당시의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재정적으로 압박을 받았고 사회적으로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핍박을 받기도 했으며, 그래도 그들의 입을 막지 못하는 경우에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짓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진리를 말하고 죽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물질주의와 재물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영적인 능력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왕노릇하는 한 부흥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분연히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믿음과 희생의 생활로 되돌릴 사람은 안 계십니까? 사람들에게 진짜로 사는 법을 보여줄 사람은 안 계십니까? (딤전 6:19)

 

 "단 하나의, 참된 삶은 영원의 빛 가운데서, 영원을 생각하며 사는 삶이며, 그리고 영원한 집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증진시키기 위해 우리의 모든 소유를 사용하는 삶입니다. 이것만이 오직 이것만이 참된 삶입니다. " (C.H. 매킨토쉬)

 

(8)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김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약 1:10~11)

 부자는 자기 재물을 기뻐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 낮아지는 것을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재물은 풀처럼 시들어 없어져버리지만 영적인 경험과 교훈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을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약 5:1~6)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재물을 쌓는 것(3절), 정당한 품삯을 주지 않고 돈을 버는 것(4절), 사치한 생활을 하는 것(6절)에 대해 소리 높여 경고합니다.

 이 말씀이 신자들에게 기록되었건 불신자들에게 기록되었건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신이 발에 맞으면 우리는 그것을 신어야 합니다.

 

(10)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7~19)

 이것을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시는 주님의 통렬한 말씀이자 교회들에게 하시는 그분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은 구태여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위의 말씀이 우리에게 특별히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위의 말씀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순종입니다.

재물에 대한 성경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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