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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신앙 서적/그리스도인과 재물

그대의 포부를 점검하라!

by 김복음 2022.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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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치 있는 인생의 포부란 무엇입니까? 어떠한 생애가 우리가 세상을 하직한 5분 후에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나타나겠습니까?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투자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부하게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할 수 있는 적합한 목표가 될 수 없다는 데 동의할 용의가 있어야 합니다.

 

(1) 주님께서 친히 금하신 것이므로(마6:19) 그 잘못에 있어 부도덕이나 살인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2) 재물은 영적인 문제에 있어 절대적인 장애물입니다. (막 10:23,24)

 

(3) 재물은 기만적입니다. (막 4:19) 겉으로 보기에는 영구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신속히, 뜻하지 않게 없어지는 것입니다.

 

(4) 우리의 본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분이셨습니다. (고후 8:9) 주님께서는 한결같이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함을 역설하셨습니다. (마 10:24, 25)

 

(5) 재물은 하늘나라에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고후 4:18)

 

(6) 그리스도인이 자기 주변에서 가난과 궁핍을 보면서 그냥 재물을 쌓아두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중대한 도덕적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몇년 전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온타리오 일간 신문에 기재된 적이 있었습니다.

 

 "고(故) 존 리빙스턴은 그가 죽을 때 온타리오 주의 퍼스에서 제일가는 부호였다. 그의 재산은 50만 불에 상당 했고 거기에다 그의 생명보험금이 50만 불이나 되었다. 그는 저 유명한 아프리카의 최초 선교 개척자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형제였다. "

 

 이 두 형제는 소년 시절에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집에 있을 때 인생의 목표를 선택했습니다. 존은 말하기를 "나는 캐나다로 건너가서 돈벌이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 자기의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반면에 데이비드는 자기의 생애를 주님께 바쳐서 아프리카의 오지(澳地)에 뚫고 들어가 토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투신했습니다. 세상의 표준으로 판단할 때 존은 현명한 사람이었고, 데이비드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보는 눈은 심히 근시안적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존이 사업에 성공을 하여 큰 재물을 쌓았고 데이비드는 아프리카에 자기의 생애를 파묻고 일하다 외로운 오두막집에서 무릎을 꿇고 죽었을지라도 오십 년 내지 칠십오 년 후에 남은 결과는 존의 이름은 지구 상에서 거의 없어졌으나 데이비드 리빙스톤의 이름은 복음이 전파되는  세계 도처에서 향기를 풍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물에 대한 욕구만이 유일한 유혹물은 아닙니다. 또 하나의 삶의 강한 욕구는 유명해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특수한 사람이 되어 명성을 얻고 유명해지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영광을 사업이나 직업을 통해서 얻고자 합니다. 그들은 거기에 모든 정열을 쏟습니다. 그들은 사업이나 과학의 전당에다 머리를 숙입니다. 끊임없이 그들은 그들이 택한 분야에서 성공을 쟁취하고자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45:5) 

 

 어떤 사람들은 스포츠계에서 명성을 떨쳐 보고자 합니다. 그들은 매우 엄격한 훈련을 받습니다. 그들은 용기를 북돋고자 많은 희생을 기꺼이 받습니다. 그리고 시합장에 나가면 우승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모든 끈을 졸라매고 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시147:10)

 

 하나님은 스포츠의 신봉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단련이 주는 유익은 단지 현생뿐이지만 경건은 현생뿐 아니라 영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딤전 4:8)

 

 또 어떤 사람들은 철학, 역사 및 음악 등의 어떤 특수 지식을 전공함으로써 명성을 떨치고자 합니다. 그러나 형언 불능의 비극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늘나라에서는 별로 소용이 없거나 전혀 소요가 없게 될 학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자 인생을 소비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 동포를 도우려고 숭고한 정신을 가지고 정치나 사회복지 및 어떤 형태의 지역 사회개발에 몸을 바칩니다. 이 사람들은 이상에 열거한 사람들 중에서 이기주의적 사상이 제일 적은 사람들이라고 그들의 명예를 위하여 일러두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타주의적 사업도 충분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돕고 그가 당면하는 중대한 문제들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그의 성품을 변화시켜 주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이상적 사업 중 어떤 것도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그 해결책인 것입니다. 가장 참된 자선 사업은 사람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사람의 가장 숭고한 노력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 이유는 첫째로 그것은 효력이 없고, 둘째로 그것은 시간적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들의 시간적 가치는 단지 현생에만 국한됩니다. 그 일들은 두 세상을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상을 충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두 세상을 생각에 두고 살지 않는 삶은 그 참된 의미를 찾지 못했다. 현생과 내생! 백발이 되어 내생에 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에게 부끄러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백발이 되지 않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아직 기회가 있을 대 그들의 생애를 불신과 저속과 이기주의와 편협심으로부터 되찾아 믿음과 정의와 고결에 이르게 하고 또 그들의 생애가 두 세상에 속한 것처럼 생각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두 세상! 그렇게 짧은 금생과 끝이 없는 내생! 저 세상에 우리를 위하여 예비되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일시적인 것, 무상한  것을 영원의 결과와 가치로 승화시켜 주는 질문입니다. 내가 오늘 행한 것은 영원토록 나를 위한 유익한 일이 되었음을 뜻한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나는 인생의 문제를 직면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윌리암 켈리는 저명한 성경 학자였습니다. 그의 성경 지식과 심오한 영적 생활은 그로 하여금 지난  세기 말엽 영국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되게 했습니다. 켈리는 친척의 한 청년을 트리니티 대학에 입학하도록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 대학의 교수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들은 켈리를 초빙하여 자기들 대학에 와서 교수직을 맡으므로 명성을 떨치라고 강력히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켈리가 도무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자 그들은 당황해했습니다. 교수 중 한 사람은 못마땅하다는 듯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켈리 씨, 선생께서는 세상에서 이름을 떨쳐보고 싶은 마음이 없단 말씀이십니까?"

 이에 대해서 켈리는 이렇게 재빨리 대답했습니다.

 "어느 세상에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포부를 점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역시 "어느 세상에서 말입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그대의 현 포부가 이 질문의 점검에 합격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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