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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신앙 서적/그리스도인과 재물

생의 중대한 결정

by 김복음 2022.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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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든 신자가 하나님과 이웃과 자기 자신에 대해 엄숙한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곧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사역을 인하여, 이웃에게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하면 영원히 멸망하게 되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어느 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신의 온 생애를 계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이 세가지 책임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리스도인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이 세상에서의 그의 생애는 비참할 것이며 저 세상에서는 궁핍할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자신을 위한 최상의 이익이겠습니까?

 또한 만일 복음과 상관없이 이웃을 위해 봉사한다면 그는 이웃을 참으로 위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시며 그리스도 없이는 그들은 멸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께 온전히 내어드린다면 실패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필연적으로 복음으로써 모든 사람을 도울 것이며 이것은 자신의 최상의 이익을 위한, 곧 이 세상에서의 행복과 미래에 받을 보상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갖는 큰 비결은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바치는 데 있습니다.

 이 비결은 먼저 우리 자신의 생애에 무엇이 최선인지를 모른다고 솔직히 시인함으로써 출발합니다. 예레미야는 이 같은 태도를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내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렘 10:23)

 

 또한 이 비결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애를 위한 최선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가 성실하게 그것을 바랄 때 하나님의 최선을 얻을 수 있고 또 그렇지 않을지라도 차선의 것이나 그다음 것 아니면 다른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참으로 믿을진대 우리는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리의 생애를 주님께 드릴 중대한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드린다는 의미는 우리의 전체(영, 혼, 육)를 주님께 양도함을 의미합니다. 나의 지체 전부, 나의 가진 것, 나의 자신 그대로를 바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주님 앞에서 나 자신의 뜻을 무조건 포기함을 뜻합니다. 이것은 전체로 내어드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베티 스템은 순교당하기 9년 전에 이 결정을 내렸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성경에다 이렇게 썼습니다.

 

 "주님, 저는 제 자신의 목적과 계획과 저의 모든 욕망과 희망과 야망을, 그것들이 육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모두 포기합니다. 그리고 제 생애에 대한 주님의 듯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제 자신과 제 생명과 저의 모두를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주님께 드립니다. 저의 모든 친구들과의 교제를 주님의 주관 아래 양도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제 마음속의 다음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저를 주님의 성령님으로 충만케 해 주옵소서. 저의 생애를 위한 주님의 뜻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금과 그리고 영원히 이루시옵소서. 저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시니이다."

 

 예일 대학교의 윌리암 보덴은 중국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 도중 이집트에서 뇌막염으로 죽기 수년 전에 이런 결정을 내렸었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제 생애에서 손을 떼옵니다. 제 마음의 보좌 위에 좌정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저를 변화시키시고 깨끗하게 하시며 사용하시옵소서. 주의 성령님의 충만한 능력을 받으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고백들은 겟세마네 동산에 울려 퍼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신 주님의 크신 목소리의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이와 같은 일은 주님의 일에 진보를 가져오고자 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뜻을 부인하고 자신을 산제물로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때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겠나이다.

 주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겠나이다.

 주께서 원하시는 말을 하겠나이다.

 주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겠나이다.

 

 한번 이 무조건적인 헌신이 결정되면 그것은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되풀이되어야 합니다. 항상 자신이 종이라는 것과 계속해서 주인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생활의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어떤 커다란 육체적인 변화를 경험합니까? 아니면 어떤 놀랄만한 감정적인 것을 경험합니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는 응답을 받게 됩니까?

 그와 같은 경우, 대게 겉으로 나타나는 어떤 표적은 없습니다. 그보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제사를 받으셨음을 확신하는 고요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한 죄인으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믿는 것처럼 우리가 산 제물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받으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후에 오는 평범한 상태 때문에 실망하는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활이 판에 박힌 듯 돌아갑니다. 혹 매일 하는 일이 평범하고 천하기조차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헌신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이 밟는 그 길이 자신을 위해 표해 두신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대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위태로운 지경에서 신실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그대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대는 점점 이상하고 작은 우연의 일치들을 생활 속에서 감지(感知)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들이 척척 맞아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 자신으로는 열어 볼 수 없었던 기회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대단히 불분명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의 생애를 뒤돌아 볼 때 주님께서 인도하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대의 생애는 매력적인 생애였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기다림(우리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길고도 고통스러운 기다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훈련의 한  부분입니다.

 언제나 돌아서고자 하는  위험,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하는 위험, 또한 비열하게 제단으로부터 기어내려 오고자 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은 자기 방에 한 좌우명을 써 붙여놓았습니다.

 "주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당신을 위하도록 저를 지켜주옵소서."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조용히 벽으로 다가가 그 표어를 떼어버렸습니다. 희생이 너무 컸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심을 돌이킬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눅 9:62)

 그러나 내어드린 생애에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후회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보덴은 그것을 "후퇴와 후회가 없는 생활"이라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값을 지불하는 생활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실제적이고 개인적으로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각자는 다음의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서 용감하고 정직하게 대면해 보아야 합니다.

 그대는 생애를 바치는 중대한 결정을 했습니까?

 그대는 아직도 하나님을 거슬려 싸우며 주님께 속한 생명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까?

 그대를 위해 죽으신 구주께 드릴 희생이 너무 지나친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대는 아직도 가고자 원하지 않는 어떤 장소가 있습니까?

 그대는 지금 곧 아무 조건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당신의 생명을 드리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의 중대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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