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리는 것을 말할 때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은 말로써 자신을 변호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참으로 애처로운 생각입니다. 사실 이 같은 생각은 다음과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1) 무슨 일이 일어나도 삶을 포기할 수 없지 않습니까?
(2) 그리스도께 자신의 생을 드린 사람은 자연히 전 시간을 바쳐 봉사해야 하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는 더 이상 일할 수 없지 않습니까?
(3)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이 좋은 직업을 갖는 것보다 굶주릴 가능성이 훨씬 많은 게 아닙니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 까닭은 첫째, 우리는 살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틀린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노예는 언제 죽을 것인가, 혹은 어떤 모양으로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동안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둘째로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은 모든 신자가 전 시간을 드려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무실이 봉사장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부엌이 봉사장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며, 어떤 사람은 자기 고장에서 그렇게 합니다.
끝으로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하는 자들에게는 생계를 위한 필수품들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이 문제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직업의 역할을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이 일을 해서 자기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이십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창 3:1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출 20:9)
"...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살후 3:10)
열심히 일하는 것은 부끄러워할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어떤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대가 주님께서 맡기신 일터에 들어가는 것이 되므로 분명한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3) 이런 의미에서 직장은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는 복음전도와 동일하게 평가됩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한 직업이(또는 직업선택에 있어) 주님께서 인도하신 것임을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의 뜻에 참으로 맡기지 않고 아무 데나 가고자 한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4) 오늘날 흔히 "세상 직업"이니, "신성한 직업"이니 구분하는 것은 영적인 신령한 것이 못됩니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되면 그것은 신성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캠벨 몰건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상 직업이란 말은 우리의 생활에서 마땅히 없애야 할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룩하면 그가 하는 일도 거룩하다고 하셨습니다. 변론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에 대해 그릇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말씀 증거를 하거나 혹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서 자신을 가리켜 성직자라 말할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아침에 연장을 담은 가방을 등에 지고 일하러 간다고 할 때 그가 만일 거룩한 사람이라면 그는 그 같은 성스런 이름으로 불림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그리하여 그가 목수의 일터에 나아가 목재 하나를 잘랐다면 그 톱은 하나님의 성스러운 기구입니다. 그 톱은 사용하는 사람이 제사장이라면 그러합니다.
모든 봉사는 신성한 봉사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다음 주에는 가계에서, 사무실에서, 그리고 사랑하는 자매님들은 가정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를 생각하실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5) 신자가 자신의 생애에 대하여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시되 그가 타고난 재능이 있는 분야에서 쓰시는 것이 보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6) 주님께서는 분명히 신자로 하여금 문제가 많은 사업이나 부정한 사업으로 인도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신자는 세속적인 직업에 종사하거나 자신의 간증을 손상시키는 직업에 있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7)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이 생애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직업은 단지 한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이것에 관련해서 캘리의 다음과 같은 대답은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무슨 직업을 가지고 사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나의 사업은 복음 전도이고 구두를 수선하여 그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이름을 따서 지은 백화점 설립자인 존 위너 메이커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신과 같이 바쁜 사람이 어떻게 주일학교 일을 할 시간이 있느냐?"는 질문에 "왜요?" 주일학교는 내 사업입니다.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사소한 일들이지요. 55년 동안 나는 주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고 약속하신 것이 확실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크나큰 점입니다. 곧 주님의 일을 제일로 여기고 그다음에 사업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직업이 부당한 비중을 차지할 때 위험은 뒤따르는 것입니다. 천막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고자 하는 낙타처럼 직업은 때때로 참 주인을 밀쳐 냅니다. 직업은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의 시간을 점점 더 많이 요구합니다. 또 그의 봉사도 별 효과를 가져오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 결과 신자는 자신의 특권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조웰이 말한 것과 같이 그는 "곧 없어질 한 기업체의 조그마한 직책 담당자"가 될 뿐입니다. 이 조그마한 직책을 얻기 위해 그는 생애의 최선의 길에서 이탈되는 것입니다.
(8) 직업을 부차적인 것이라고 하여 직장 일을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간증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리고 전심으로 수행하여 주께 하듯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의 고용주가 주는 보수에 합당하게 모든 시간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자신의 비용으로, 다시 말해서 자신의 시간을 사용해야지 고용주의 시간을 빼앗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고용주의 요구가 자신의 주님에 대한 책임을 침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를 그 한계로 할 것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에 자주 부딪힙니다. 이 미묘한 균형을 잘 지켜 나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합니다. 즉 내가 이 문제에 있어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한다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존귀하게 여겨 직장을 바꿔야 하는 불가피한 일이 생길지라도 구걸하도록 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9) 또 하나 조심해야 할 함정은 불신자들이 해도 잘 해낼 일에 우리의 생애를 바치는 일을 피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자아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눅 9:6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장사하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의 입술만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필요 불가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0) 우리는 절대로 더러운 이해관계 때문에 주 예수님을 위하여 하지 못할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바치기에 합당치 않는 것을 직장에 바치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11)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또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때에 주님은 그의 봉사의 영역을 넓히시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그의 시간은 주님의 일에 점점 더 사용되며 또한 그의 매일매일의 필요도 공급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하고 틀림없는 부르심을 받아 그의 전 시간을 본국에서나 혹은 외국에서 전도나 가르치는 일에 바치게 되기도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그와 같이 분명할 때에는 일상 필요의 공급에 대해 두려워할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부르시면 반드시 공급도 하십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되는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하나님의 공급이 부족하지 않는다."
(12) 세상이 사업의 성공이나 지위의 영전을 영광으로 여기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그와 같은 것들을 초연한 자세로 대해야 합니다. 작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한 공공기관의 머리가 되는 것보다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청소부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상의 것들이 바로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생업을 생각함에 있어 깊이 고려해야 할 점들입니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로 자기를 인도하셨는가를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는 데로부터 피하려는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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