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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묵상

매일의 묵상 06월 23일 (영원한 축복의 약속)

by 김복음 2022.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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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 4:14)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 중 하나가 주님 안에서 죽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감정적으로 실의에 빠집니다. 어떤 이들은 슬퍼하긴 하지만 잘 참아냅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얼마나 온전히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근본 진리들을 소유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죽음을 구주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죽음은 요한복음 17장 24절의 구분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이다." (요 17:24)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이 그분과 함께 있기 위해 떠날 때, 그분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기실 것입니다. (사53:11)

 

 "그의 경건한 자들(성도)의 죽음은 여호화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시 116:15)

 

 그리고 우리는 죽임이 죽은 자에게 의미하는 바를 되새겨야 합니다. 그는 왕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그 안으로 먼저 들어간 것입니다.

 그는 죄와 질병과 고통과 슬픔에서 영원히 벗어났습니다. 그는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입니다. (사57:1)

 라일 감독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가 본향으로 가는것(집으로 가는것, 이 낡은 장막 집을 떠나는것, 물질의 속박에서 풀려나 헤아릴 수 없는 천사들의 무리로부터 환영을 받는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죽는 그 순간 낙원에 있게 됩니다. 그들의 싸움이 끝이 났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언젠가 디뎌야 할 어두운 계곡을 통과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언젠가 지나야 할 어두운 강을 건넜습니다. 그들은 죄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그 마지막 쓰라린 잔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슬픔과 한숨이 더 이상 없는 그러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확실히 우리는 그들이 되돌아 오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울지 말고 우리를 위해 울여야 합니다."

 믿음은 이러한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으며,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견고히 서게 해줍니다.

 우리에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항상 슬픔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망없는 다른 이들처럼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살전 4:13)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며 그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이별은 잠시 뿐임을 압니다. 그날에 우리는 임마누엘의 땅 언덕에서 재결합될 것이며, 이 땅에서 경험한 어떤 상황보다 더 좋은 상황 아래서 서로 만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주님의 강림하심을 고대합니다. (살전 4:16~17) 이 소망이야 말로 말할 수 없이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에게 결코 작지 않습니다. (욥 15:11) 우리의 슬픔은 기쁨이 뒤섞여 있으며, 우리의 상실감은 영원한 축복에 대한 약속으로 인해 넉넉히 보상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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