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10:14)
자녀의 죽음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에 있어서 가혹한 시련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때 우리를 붙들어 줄 견고한 지주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반적인 믿음은, 책임 연령 이전에 죽는 어린이들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어린이는 그 스스로 구주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능력이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모든 효과를 그에게 거저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구주의 사역의 효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구원받습니다.
책임 연령에 관해서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어린이마다 성장 속도가 다르기 떄문에 각 경우마다 달리 적용될 것이 분명합니다.
책임 연령 이전에 죽는 어린이가 천국에 간다는 구체적인 말씀은 전혀 없지만, 그러한 견해를 지지해 주는 두 구절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오늘의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10:14)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들을 특징 지워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들의 구원을 지지해 주는 매우 강력한 논거가 됩니다.
또 다른 근거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어른들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눅19:1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암시된 의미는,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잃어버린바 되지 않았으며, 구주께서는 그들이 죽을 때 그들을 주권적으로 그분의 우리 안에 모아들이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아는바가 없지만, 하나님은 그 사실을 아시며, 그 사역의 모든 효험을 그들에게 적용된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우리에게서 취하여 가실 때 우리는 그분의 섭리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짐 엘리오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혹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보다 오래 함께 살고픈 이들을 젊을 때 데려가신다 해도 나는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영원을 살고 계시며, 나는 그분을 늙은 이들로만 둘러 싸이게 해서는 안됩니다."
'매일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의 묵상 06월 26일 (방해를 이기는 방법) (0) | 2022.06.26 |
---|---|
매일의 묵상 06월 25일 (죽음에 대한 위로) (0) | 2022.06.25 |
매일의 묵상 06월 23일 (영원한 축복의 약속) (0) | 2022.06.23 |
매일의 묵상 06월 22일 (좋은 것을 취하라) (0) | 2022.06.22 |
매일의 묵상 06월 21일 (성경이 말하는 이상적인 남편) (0) | 2022.06.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