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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신앙 서적/성령의 내주, 그리고 충만

성령의 내주하심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무엇인가? (Chapter 1)

by 김복음 2024.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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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3~14)

 

성령의 내주 하심의 두 가지 측면

성령의 내주 하심이라는 진리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이 두 가지가 앞서 인용한 두 구절에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이 우리를 소유하시는 측면과 우리가 성령님을 소유하는 측면입니다. 마치 창세기 44장에서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나의 종이 되고."라고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그 속에 성령님이 내주 하시는 사람만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기업의 보증이 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소유한 보화이며, 또한 그분이 소유하신 모든 것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도 편지를 쓸 때, 편지를 쓰는 도중이 아니라 쓰는 일을 다 마쳤을 때에야 비로소 편지가 최종 목적지에 안전하게 발송되도록 인봉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너희를 위한 목적지를 정했다. 따라서 나는 너희를 인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 세상이 예수님에게 충분히 선하지 않았다면, 예수의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선하지 않을 것임이 자명합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얻은 영광을 똑같이 얻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들어가신 특별한 자리에서 그분이 누리고 계신 특별한 기쁨을 나누도록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우리를 원하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아운 일인지요.

 

 우리는 어쩌면 가련한 거지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간의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라면서 그분 앞에 나아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원하셨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서 우리를 얻으셨을 때,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사, 값 주고 사신 우리를 자신의 기업으로 삼으시는 그날까지, 곧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풍성한 계획이 실현되는 그날까지 안전하게 보호되도록 조치를 취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인침이 전제로 하는 것

 성령의 인침은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는 행위가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도장을 찍어 확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침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그분의 소유가 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라고 말씀합니다.

 

 한 하녀가 손님이 묵고 있는 방문 앞에 와서 손수건을 들고는 "이것이 손님의 손수건인지요? 오늘 아침 세탁하는데서 발견했습니다."라고 묻습니다.

 손님은 손수건을 살펴보지도 않고, 바로 "거기에 제 이름이 수놓아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아닙니다. 이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여드리고자 이렇게 가지고 온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살펴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자, 그렇다면 무엇이 그 손님으로 하여금 손수건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했을까요?

 

 만일 당신이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제 아내는 제가 쓰는 물건에 대해 세심한 배려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집을 떠나기 전, 제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손수건마다 제  이름이 눈에 띄도록 표시를 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표시가 없는 것은 제 것이 아니며, 또한 제 이름이 새겨진 것이야말로 진짜 저의 것이지요."

 

 길 잃은 여왕벌은 일벌 때와 함께 다니다가 빈 꿀통을 보면 그것을 차지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후로 자신의 소유로 삼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내주 하심은 이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자신의 거처를 정하시고, 나를 자신의 것으로 인치시는 것은, 내가 이미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 하심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

 그러므로 성령의 내주 하심이 우리 속에 이루어지려면 선행되어야 할 필수적인 사항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 정결 함을 받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내주 하실 수 있는 합당한 거처가 되지 못합니다.

 

 대제사장 아론은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인물이었기에, 피를 바르는 일 없이도 거룩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는 참으로 자신의 인격적인 탁월성으로 인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레위기 8장 12절, 누가복음 3장 22절, 사도행전 10장 38절을 읽어보십시오. 하늘 가족의 모형으로서 아론과 그 아들들의 경우에는 기름을 바르기 전에 반드시 피가 먼저 발라져야 했습니다. 레위기 8장 23~24절, 30절, 그리고 사도행전 10장 44절을 읽어보십시오. 고넬료와 그 가족들이 성령님을 받기 전에, 그들은 먼저 구원 얻을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행 11:14)

 이처럼 하나님의 모든 섭리 가운데에는 구약의 모델과 그림자 그리고 신약의 실제 사이에 얼마나 아름다운 일치성이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있는 백성들 가운데 거하기 위해서 강림하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유월절 어린양의 뿌려진 피를 통해 보호를 받아야만 했고, 애굽의 공사감독의 멍에 아래서 해방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절과 28절을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나서 신명기 16장을 꼼꼼히 읽어보면, 당신은 오순절이 임하기 전에 먼저 유월절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몇 년 전에 그리스도의 한 귀한 종이 사용한 예화를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목장주가 새로 산  양들에게 낙인을 찍도록 목자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이는 그가 그 양들을 샀으며, 또한 이미 값을 다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목장주는 팔고자 시장에 내놓은 양들을 값을 치르기도 전에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낙임을 찍으라고 부탁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목자들은 양들이 이미 농장주의 소유가 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양들에게 목장주의 이름이 들어간 낙인을 찍습니다. 그 양들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산 자신의 목장주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낙인이 찍힌 후에, 만일 이 양무리 가운데 한 연약한 양 한 마리가 자신이 정말 주인에게 속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걱정과 염려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목장주의 생각에 따라 대답해 준다면, 그들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까?

 

 "시장에서 목장주가 당신의 값을 지불하고 거래를 끝낸 것을 알지 못하고 계신가요?"

 

 "알아요, 하지만 그 일은 제가 직접 한 일이 아니잖아요. 사실 나는 나 자신을 보지 말고, 그 사실을 봐야만 한다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 여전히 저를 괴롭히는 문제가 있어요. 바로 '나는 정말 인침을 받았는가 아니면 받지 않았는가?'에요."

 

 "그렇다면 이 질문에 답해 보십시오. '지금 당신은 당신이 태어났던 양 떼의 옛 주인에게 속해 있나요?' 아니면 당신을 값 주고 산 새로운 주인에게 속해 있나요?"

 

 "아, 물론 새로운 주인에게 속해 있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진 일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은 주인이 친히 우리에 대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행한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 새로운 주인에게 속했다면, 당신의 몸에 지니고 있는 표시는 충성스러운 목자가 일한 결과입니다. 당신의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모든 것을 그 사실에 맡기고 안심하십시오!"

 

 신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정말 거듭난 사람이라면, 우리 속에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또 다른 사람, 즉 타락한 아담이 아니라,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아직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인침을 받을 것이라 허망한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내주 하시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 이러한 인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지위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의 분명한 교훈입니다.

 

 이와 같은 영혼의 고뇌가 있는 사람은 이 소책자를 읽으시고, 성령님은 우리가 "듣고 믿을 때" 받게 된다는 성경의 진리를 마음속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듣고 믿는다는 것은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롬 1:1~4)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리고 당신의 영혼 속에 당신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하나님이 공의롭게 높이신)와 연합되어 있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이 성령의 인침을 받았는지 아닌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성령님의 인침은 당신 자신의 감정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의 사실성에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일은 당신을 감정으로 가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증거에 대한 한 오래된 찬송가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성령님은 나의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 좋은 기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네.

다만 우리의 눈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예수님과 그분의 보혈을 보게 하신다네.'"

 

 한 가지 예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집 나간 아들이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아버지에게 나쁜 감정을 품고, 밤에 몰래 돌아와서는 돈을 훔치고자 아버지 집을 침입했습니다. 아버지의 책상 서랍에서 잡다한 서류들을 발견했고, 그러다가 아버지의 유언장을 찾아내었습니다. 촛불을 켜놓고 유언장을 읽어나가다가 자신이 읽은 내용에 울며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자신이 생각할 때 한 푼도 못 받을 줄 았았는데, 자신에게 엄청난 유산이 남겨진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이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촛불의 불빛도 아니요, 또한 자신이 느끼는 감정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각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직행했고, 그 사랑의 빛 가운데서 자신이 너무도 미워졌습니다. 하지만 촛불 덕분에 자신이 유언장을 읽을 수 있었고, 또 유언장에 담겨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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