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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신앙 서적/성령의 내주, 그리고 충만

언제 성령님을 받는가? (Chapter 2)

by 김복음 2022.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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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인 세 가지 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구주를 준비하심에 있어서 세 부분의 시간적인 구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약속의 때입니다. 이 기간은 에덴동산에서의 약속부터 예수님이 탄생하신 때까지입니다. 이 기간 후에 짧은 과도기가 오는데, 우리는 이 기간을 확증의 기간이라고 부릅니다. 이 두 번째 기간에 약속된 메시아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오셨고, 메시아의 사자였던 세례 요한은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소개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소개였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36 참조)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했던 메신저들 가운데 세례 요한 보다 더 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는 더 크게 됩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결코 완성된 구속의 역사를 보지 못했고, 또한 그 가치에 대한 성령님의 증거를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부활하신 구주에 대해서 증거 할 수 없었고, "저(부활하신 예수님)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라고 말할 수 없었으며, 또한 이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노라."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앞의 예화에서 그 늙은 시녀처럼, 구원의 소망을 갖는 것만이 요한의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세 번째로 그 약속이 성취되는 날이 도래했습니다. 성령님이 오셨던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위대한 거래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죄 자체와 범죄들(또는 죄에 대한 책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와 죄인으로서 심판받아야만 하는 인간의 절대적인 필요가 정당하게 해결되었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십자가의 해결(청산, 결산, 지불)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참으로 복스러운 결과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어떠한가요? 이미 이루어진 일을 아무것도 모른 채 있어야 하나요? 오, 그래선 안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찬송받으실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정작 자기들을 위해서 이루어진 일을 인간이 모른 채 있거나, 또는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사랑을 알지 못한 채 있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성취된 이 일을 사람의 마음속에 알리는 일을 할 수 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었던 사람을 아끼시는 사랑을 온전히 알리고, 그 사랑을 누리도록 할 수 있을까요? 누가 그 사역을 합당하게 평가하여 높일 수 있으며, 그 일을 이루신 분, 즉 아버지의 모든 기쁨이 저에게 있다고 하신 분, 곧 우리 주 예수님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을까요? 천사가 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가브리엘 천사라도, 그가  여러 차례 중요한 소식들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만, 영원한 구속을 그가 이룰 수 없는 것같이 복음을 전하는 일 또한 할 수 없습니다.

 

 일어난 모든 일을 생각해봅니다. 그 일은 단지 어떤 소식을 전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소식을 전하는 일은 천사나 또는 선지자들도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인간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인간을 위한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사람 안에서 선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구원의 복음을 믿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맡은 분(성령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이 땅에  있는 신자에게 가져다줄 수 있어야만 하며, 그분 자신이 그러한 생명의 능력 자체가 되어야만 하고, 또한 신자에게 자신이 더 이상 육신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음을 자각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는(성령님은)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로 인식하게 해 줄 수 있어야만 하고,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자유를 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는(성령님은) 신자와 영광을 받은 머리이신 주님과 실제적인 연합을 이루는 연결고리가 되어 주어야 하며, 또한 머리 되신 주님으로부터 신자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얻게 해주는 수단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는(성령님은) 신자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신자로 하여금 무엇이 진리에 속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는(성령님은) 승천하신 주님의 종들에게 영적인 은사를 나누어 줄 수 있어야만 하며, 또한 은사들을 사용하는 일에 있어서 영구적인 자원이 되어 주어야만 합니다.

 

 그는(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예배가 열납 되고, 그들이 행하는 사역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능력이 되어 주어야 하며, 영적인 지각력을 가지고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신자로 인내하며 깨어 기다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성령 외에 누가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히브리서 10장 15절에서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 하시되."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증거 하시는 분으로 소개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 성령님이 이 땅에 오신 주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님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베드로도 이 일에 대해서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벧전 1:12)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일은 앞으로 될 일을 단지 소망만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신 분을 믿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위한 위대한 사도가 증거 한 진리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행 13:32, 33,26) 또한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할례자의 사도인 베드로가 한 말에도 귀를 기울여봅시다.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행 10:43)

 

 사도행전 11장 17절에 의하면 그들이 믿자마자 바로 성령님을 선물로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에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리고 10장 44절에서는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44)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 축복의 시대가 열리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인지요! 보배로운 피가 더 이상 흘려질 필요가 없습니다. 사망조차도 이제는 부활하신 구원자를 더 이상 다스릴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의 증거가 실현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믿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곧 이루어질 것에 대한 밝은 소망을 갖고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치 앞의 예화에서, 여왕 폐하께서 약속한 빚을 갚아 주고자 약속된 장소에 도착한 것을 보는 늙은 시녀와 같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복음을 듣는 사람은 반드시 둘 중 하나에 해당됩니다. 즉 구주께서 세상에 오셔서 이미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 그의 흘리신 피로 인해서 구원을 받거나 아니면 그분을 거절함으로써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로 정죄를 받게 될 것이나 입니다. 이에 성경은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6)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게 됩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렇습니다. "이제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구주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성령님은 자신의 거처를 정하고자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절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라고 묻습니다.

 율법의 행위도 아니고, 세례 요한의 증거처럼 성육신하신 구주께서 이 땅에 임하신 사실에 대한 증거로도 아니라, 물론 그것들은 참으로 복된 일이지만, 오직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리스도, 그리하여 부활하셔서 영광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그리고 이 구원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서만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복음의 빛을 여러분의 영혼 속에 비추심으로써,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이 기껏 구원의 소망만이 아닌 것을 알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을 소망하는 것에만 안주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을 위해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주님을 하나님이 받으신 것과 그 부활하신 이들을 가치 있게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생각하심에 여러분도 동의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만족할 때, 당신은 다음과 같이 찬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은혜 로우 신 구주여,

당신은 두려워 떨리는 나의 영혼으로 하여금

당신의 보배로운 피로써

제가 눈처럼 희게 되었음을 알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무거운 죄짐을 대신 지셨기에

죄악과 두려움이 사라지나이다

당신의 피로써 이루신 공로 덕분에

나는 영원히 안전하옵나이다

 

참으로 은혜로우신 주님!

주님의 얼굴을 뵙는 것 외에 더 무엇을 기다리오리까

주님이 확실한 보증을 주셨사오니

주님을 친히 뵙는 것은 과연 어떠한 기쁨이 오리까

 

당신의 음성을 듣고, 당신의 얼굴을 뵙기만을 바라오니

어찌 당신의 마음을 근심하게 하리오

나 이제 당신 은혜의 충만함을 맛보며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누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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