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개관

갈라디아서 개관 (1장~6장)

by 김복음 2023. 4. 3.
728x90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자유와 책임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의 전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주의자들이 믿음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고 할례를 비롯하여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다 함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자 성도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으며 오직 은혜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굳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은혜와 자유를 빙자한 무법주의는 죄악의 속성인 육체를 좇아 행하는 것이며 오직 은혜의 믿음은 내주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결론을 내려 줍니다.

 

1장~4장 : 오직 믿음으로

 1장에서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불신을 불러일으켰으며 바울이 전하는 복음도 불신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음을 밝히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다른 복음은 없나니.",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경고했습니다.

 유대주의자였던 바울은 유대교를 광신해서 사도가 되기 전 교회를 핍박하고 잔해 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로 자기를 부르신 사실을 깨닫고 소명에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순종하기 위해서 가족들과도 의논하지도 않고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고 오직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머물면서 자신의 생아가 참으로 잘못되었음을 깊이 깨닫고 주님의 계시를 통해서 복음의 진수와 신약 교회의 비밀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행 9:23)

 2장에서 바울은 회심한 지 3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베드로와 교제하면서 15일을 지냈습니다. 그 후 14년이나 지나서 바울이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이방인의 사도로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을 보자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습니다. 물론 베드로도 고넬료의 가정에 전도할 때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례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예루살렘회의에서 부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갈 2:16)

 그리스도인으로서 할례를 지켜야 한다면 유대교의 모든 규례를 지켜야 할 것이며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입니다.

 3장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할례를 비롯하여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으리라는 분멸은 참으로 모순이며 어리석은 일임을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분명할진대 어찌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까?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시고 우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 인가요? 듣고 믿음에서 인가요?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는 자로서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기에 율법을 행하는 자는 한순간도 율법에 저촉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셨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으며 율법이 마치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가정교사 같은 역할을 해주었지만 이제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더 이상 가정교사인 율법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갈 3:24~25)

 4장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께 속한 자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자녀라 할지라도 어렸을 때에는 청지기나 후견인의 지시를 받듯이 우리도 전에는 율법의 멍에 아래서 살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율법에서 속량 하시고, 자녀의 명분을 얻게 하셨으며,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의 경륜이 아니었던 율법에 종노릇 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으니 어찌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종노릇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때에도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님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갈 4:4~5)

 

5장~6장 : 오직 성령으로

 5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녀로서의 자유를 주셨으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율법의 종노릇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례를 행해야 하면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할 것이며,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가 있으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입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 아니며 누룩처럼 번져 나갈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방종하며 살아갈 것입니까? 도리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해야 할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르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슬러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우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믿는다는 사람 가운데 율법에서 해방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무법주의로 행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아직도 성령님의 인도하심과는 상관없이 육체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자에 불과합니다. 진실로 주님을 믿어 성령님을 좇아 살아가는 자에게는 성령님의 행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은 사람이 율법을 지켜야 하느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좇아 살며 행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갈 5:25~26)

 6장에서 참으로 우리가 성령님을 좇아 살아가는 신령한 자라면 죄를 범한 형제들을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아주며 자신도 동일한 성정이 있어서 유혹을 받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신령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잘 감당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약과 부족을 감당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서 살피기보다는 각각 자기의 일을 살펴야 합니다. 신령한 자람녀 가르치을 받는 자로서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에서의 해방을 주장하면서 방종을 합리화하고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지만 이는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삶으로서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모든 이에게 선한 일에 힘쓰되 더욱 믿음의 가정을 선대 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율법에서의 해방을 핑계로 부도덕과 불법을 정당화하는 것도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은 내주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율법주의자로서는 불가능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갈 6:9~10)

728x90

'성경개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립보서 개관 (1장~4장)  (0) 2023.04.07
에베소서 개관 (1장~6장)  (0) 2023.04.05
고린도후서 개관 (1장~13장)  (0) 2023.03.28
고린도전서 개관 (1장~16장)  (1) 2023.03.22
로마서 개관 (1장~16장)  (0) 2023.03.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