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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신앙 서적/하나님의 학교에서 배우는 교훈들

모든 사람에게 요청되는 회개

by 김복음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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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35)

 

 주 예수님은 두 번에 걸쳐서 "회개하라."라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이 요구는 오순절 날 교회가 형성되고 난 후에도 계속적으로 반복되었습니다. (행 5:31, 11:18)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께 대한 믿음"은 서로 분리된 내용이나 복음의 메시지에서는 짝을 이루어 언급되고 있습니다. (행 20:21) 회개는 구원받는 믿음에 있어서 근본적인 요소이자, 구원받은 믿음을 소유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히 6:1, 6:7) 실로 회개는 복음 자체는 아닙니다. (고전 15:1~4) 하지만 회개는 침례 요한의 사역에서 잘 나타나는 것처럼 주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도록 준비시키는 길이 됩니다. (마 3:3) 이 회개는 어떤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구원을 얻기 위한 공로나 사역이 아닙니다. 회개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순종해서 자신과 죄로부터 돌이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순종의 표현입니다. 이렇듯 '돌이킴'은 구원에 있어서 꼭 필요한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회개하여 돌이킬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혹자들의 주장처럼 '회개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주장하기를, 하나님의 선택적인 목적이 의지의 속박과 함께 죄인들에게서 떠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죄인들은 스스로 회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이상한 논리는 성경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의 괴변적인 주장이 맞는다면 주님께서 회개하라는 선언, 즉 죄인들을 향해서 회개하라는 주님의 선포는 극히 잘못된 요구일 것입니다. 사실상 어거스틴과 칼빈의 주장을 따르다 보니 신학적으로 잘못된 결론에 다다른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처럼 올바르지 못한 신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괴변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자신의 내적인 공허함을 인식하면서부터 회개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을 향한 회개의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더 깊어져 갔습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 저는 스스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무시한 죄악 된 삶의 실체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 같은 이전의 삶을 계속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 같은 이전의 삶을 계속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삶에서 확고한 의지적 결단을 갖고 이전의 죄악 된 삶을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가 내 삶의 주인과 본으로 그분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어느 누가 이처럼 회개의 단계를 생략한 채 주 예수님의 추종자가 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전 세계적으로 이 회개에 관한 해석의 차이로 복음주의 교회들 안에서 조차 교회들이 분열되는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회개는 단연코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그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려 합니다. 그리고 매번 설교할 때마다 그 문제를 짚고 넘어갑니다. 그들은 주님의 가르침에는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회개의 필요성을 집요하게 공격하려 듭니다. 마치 이 같은 성향은 치료법이 없는 질병처럼 기독교계 안에 깊이 침범해 있습니다. 그 결과 회개 업는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은 성경말씀 스스로가 답변하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입니다. 반면에 회개에 관한  분별이 모임 안에서 심각한 분쟁을 일으키지 않은 한, 나름대로의 연구를 통해서 약간의 다른 분별을 가진 성도들을 공격하지 말고 교제하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 말에 대해서는 모두가 '아멘'이라고 화답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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